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뉴스 오피니언

가정공동체를 이끄는 지혜

인제신문 기자 입력 2026.08.19 09:39 수정 2026.08.19 09:39

<인제칼럼>

↑↑ 최용건 인제신문 주필
서울대학교 회화과 학사
동국대 교육대학원
(전)동아일보 칼럼니스트
장편 소설 ‘그녀가 자작나무숲으로부터 걸어
나왔다’ 책과나무 출판사외 수필집 다수 출간
ⓒ 인제신문

한 공동체 안에서는 언제나 구성원들의 다양한 의견이 나올 수 있다. 서로 다른 생각이 존재한다는 것은 오히려 건강한 현상이다. 문제는 그 의견들이 끝없이 충돌하기만 하고 조정되지 않을 때다.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 결정하지 못하면 공동체는 중심을 잃고 갈팡질팡하게 된다. 따라서 때로는 누군가가 여러 의견을 충분히 듣고 조율하여 공동체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가정도 하나의 작은 공동체다. 과거에는 대체로 남편이 아내보다 나이가 많았고, 교육을 더 받거나 경제활동을 주도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남편이 집안의 중요한 결정을 도맡았고, 이러한 가족 형태를 흔히 ‘가부장적 가족’이라 불러 왔다.

그러나 오늘날 ‘가부장적’이라는 말을 단순히 남편의 말을 아내가 따라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시대가 크게 달라졌기 때문이다. 남녀의 교육 수준에도 별 차이가 없고, 여성이 가정경제를 주도하는 경우도 흔하다. 아내가 남편보다 나이가 많은 부부도 적지 않다. 이제 가정을 이끄는 힘은 성별이나 나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판단과 그 판단에 대한 책임에서 나와야 한다.

부부가 살아가다 보면 어떤 문제에서는 남편의 판단이 더 합리적일 수 있고, 또 다른 문제에서는 아내의 판단이 훨씬 현실적일 수 있다. 경제문제라면 경제활동 경험이 많고 재정에 밝은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이 좋다. 자녀교육 문제라면 아이를 더 잘 이해하고 교육에 식견이 있는 사람이 중심이 되어 의견을 내는 것이 바람직하다. 집을 마련하거나 노후를 준비하는 일, 친척들과의 관계를 조정하는 일에서도 마찬가지다. 그 문제를 가장 잘 알고 경험이 많은 사람의 판단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물론 학력이나 나이, 사회경험도 판단의 중요한 참고가 될 수 있다. 특히 연장자는 오랜 세월을 살아오면서 여러 시행착오를 겪었기에 그 경험 자체가 귀중한 자산이다. 그러나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생각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연장자의 진정한 역할은 명령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의견을 듣고 갈등을 조정하며 보다 나은 결론에 이르도록 돕는 데 있다고 본다.

가정에서도 남편과 아내가 서로의 능력과 경험을 인정해야 한다. ‘내가 남편이니까’, 혹은 ‘내가 경제권을 가지고 있으니까’라는 이유로 상대방의 생각을 무시한다면 화목한 가정을 이루기 어렵다. 반대로 상대방의 의견이 더 합리적이고 건설적이라면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고 기꺼이 받아들일 줄도 알아야 한다. 그것이 부부 사이의 진정한 존중일 것이다.

가정에는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순간이 끊임없이 찾아온다. 그때마다 남성이냐 여성이냐를 따지기보다 누가 더 현명한 판단을 하고 그 결과에 책임질 수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그리고 한번 결정한 일에는 부부가 함께 책임을 져야 한다.

결국 가정을 이끄는 것은 가부장적 권위가 아니라 지혜다. 상대를 복종시키는 힘이 아니라 서로의 경험을 인정하고 더 나은 의견을 받아들이는 힘이다. 그런 신뢰와 존중이 쌓일 때 가정은 화목해지고,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흔들리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이다.


저작권자 인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