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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사설

생활정치인에게 필요한 것은 권력이 아니라 양심이다

인제신문 기자 입력 2026.09.08 08:05 수정 2026.09.08 08:05

정치인의 말은 많다.

공약도 많고, 비전도 많다. 선거가 끝나면 주민을 위한 약속이 쏟아진다. 그러나 정작 주민이 정치인에게 묻고 싶은 것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다.

“당신은 권한을 누구를 위해 사용하고 있는가.” 이 질문에 정치인은 답해야 한다.

민선 9기 인제군정이 출범했다. 인제군은 민선 8기의 군정 기조를 이어가며 ‘사람중심·행복중심·미래중심 인제’를 내걸었다. 새로운 군정의 출발점에서 이제 중요한 것은 구호가 아니다. 그 구호를 실제 주민의 삶 속에서 어떻게 증명하느냐이다.

생활정치도 마찬가지다. 생활정치는 거창한 정치가 아니다. 주민이 불편해하는 길을 살피고, 농민의 목소리를 듣고, 청년이 지역을 떠나는 이유를 고민하며, 어르신들의 하루를 들여다보는 정치다. 그런데 생활정치가 주민의 삶보다 정치인의 입장과 이해관계를 앞세우는 순간, 그것은 생활정치가 아니라 생활정치를 가장한 권력정치가 된다.

여기서 칸트의 ‘정언명령’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칸트는 자신이 따르는 행동의 원칙이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지를 스스로 물어야 한다고 했다. 정치인에게 이 말을 바꾸어 묻는다면 이렇다. “내가 지금 하는 행동을 다른 정치인 모두가 똑같이 한다면, 그래도 옳다고 말할 수 있는가.” 정치인에게는 매우 불편한 질문이다. 내 편에게는 관대하고 상대에게는 엄격한 것은 아닌가. 내가 추진하는 사업은 주민을 위한 것이고, 상대가 추진하는 사업은 정치적 계산이라고 단정하고 있지는 않은가. 선거 때는 주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가 소중하다면서 선거가 끝난 뒤에는 그 주민의 비판을 귀찮은 민원쯤으로 여기고 있지는 않은가.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 이 질문에 떳떳하게 답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원칙이다.

다산 정약용의 목민정신도 같은 곳을 가리킨다. 다산이 『목민심서』에서 목민관에게 가장 먼저 요구한 것은 남을 다스리는 기술이 아니었다. 자기 자신을 다스리는 일이었다. 자신의 욕심을 절제하고, 공과 사를 구분하고, 공직의 권한을 사사롭게 이용하지 않는 것. 그리고 백성을 위한 마음으로 공적인 일을 처리하는 것. 오늘날 지방정치인에게도 이보다 더 중요한 덕목은 없다. 율기(律己), 봉공(奉公), 애민(愛民). 스스로를 다스리고, 공적인 책임을 다하고, 주민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말은 쉽다. 그러나 권한을 가진 순간부터 이 세 가지는 어려워진다. 자신을 다스리는 것보다 남을 비판하는 일이 쉽고, 공익을 말하는 것보다 내 사람을 챙기는 일이 쉬우며, 주민 전체를 생각하는 것보다 지지자와 가까운 사람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방정치에는 도덕적 자기통제가 필요하다.

군수도 예외가 아니고 군의원도 예외가 아니다.

집행부는 선거에서 얻은 권한을 군민 전체를 위해 사용해야 한다. 의회는 집행부를 감시하고 견제해야 하지만, 견제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인제군의회가 최근 조직개편안을 심의하면서 일부 내용을 수정해 의결한 사례에서도 지방의회의 역할은 분명하다. 집행부가 제시한 정책을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도 의회의 역할이 아니며, 반대로 무조건 제동을 거는 것도 의회의 역할이 아니다. 따져보고, 고칠 것은 고치고, 필요한 것은 협력하는 것. 그것이 지방의회의 존재 이유다.

집행부 역시 의회의 비판을 정치적 반대라고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의회가 문제를 제기했다면 먼저 ‘왜 반대하는가’를 살펴야 한다. 주민의 세금이 들어가는 사업이라면 더욱 그래야 한다.

정치는 승부가 아니다.

특히 인제와 같은 지역사회에서 정치가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싸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지역사회는 좁고 주민들은 서로 연결돼 있다. 오늘의 정치적 경쟁자가 내일은 지역 현안 앞에서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할 동료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인제의 생활정치에는 절제와 품격이 필요하다. 정책은 치열하게 경쟁하되 사람을 공격해서는 안 된다. 잘못은 지적하되 인격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 다른 의견을 반대한다고 해서 그 사람을 지역의 적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주민을 표로 보지 말아야 한다.

주민은 선거 때 필요한 표가 아니라, 행정과 정치가 존재하는 이유 그 자체다.

칸트의 표현을 빌리면 인간은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어야 한다. 이를 생활정치에 적용하면 명확하다. 주민을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 주민의 의견을 듣는 것도 선거를 위한 전략이 아니라 주민을 존엄한 시민으로 대하는 태도여야 한다.

다산의 목민정신 역시 마찬가지다.

목민관은 백성 위에 군림하는 사람이 아니라 백성을 위해 책임지는 사람이다.오늘날 군수와 군의원에게 이 원칙은 더욱 엄격하게 적용돼야 한다. 권한을 가진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특권의식이 아니라 책임의식이다. 인제의 미래는 몇 개의 대형 사업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관광객 1천만 명이라는 숫자도 중요하고, 인구 7만이라는 목표도 중요하다. 그러나 숫자가 커지는 것만으로 주민의 삶이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청년이 인제에서 살아갈 수 있어야 하고, 아이를 키울 수 있어야 하며, 농민이 농업을 계속할 수 있어야 하고, 어르신이 불편 없이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생활정치의 출발점이다.

정치인이 주민에게 보여줘야 할 것은 화려한 정치적 언어가 아니다. 약속을 지키는 모습, 잘못을 인정하는 모습, 반대 의견을 듣는 모습,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을 구분하는 모습이다. 그리고 선거에서 이긴 뒤에도 자신을 선택하지 않은 주민을 똑같이 존중하는 모습이다.

칸트와 다산은 시대도 다르고 사상도 달랐다. 하지만 두 사람이 정치와 공적 책임을 생각하는 오늘의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놀랍도록 닮아 있다.

“너 자신부터 다스리고 있는가.”

“네가 하는 일을 모든 사람이 해도 옳다고 말할 수 있는가.”

“사람을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지는 않은가.”

“공적인 권한을 공익을 위해 사용하고 있는가.”

민선 9기 인제군정과 새롭게 출범한 인제군의회가 이 질문 앞에 서야 한다. 주민에게 필요한 것은 완벽한 정치인이 아니다. 부끄러움을 아는 정치인, 잘못을 인정할 줄 아는 정치인, 권한보다 책임을 먼저 생각하는 정치인이다.

인제의 생활정치가 중앙정치의 축소판이 되어서는 안 된다. 편 가르기와 진영논리, 보여주기식 정치에서 벗어나야 한다. 정책으로 경쟁하고 결과로 평가받아야 한다. 그리고 임기가 끝나는 날 주민 앞에서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내 편을 위해서가 아니라 인제군민 모두를 위해 일했다.”

그 한마디를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정치인이라면 주민은 기억할 것이다. 결국 정치인의 가장 강력한 자산은 조직도, 직함도, 권력도 아니다. 양심이다.

칸트의 정언명령과 다산의 목민정신이 오늘 인제의 생활정치에 던지는 가장 날카로운 가르침도 바로 이것이다. 권력을 가졌다면 먼저 자신을 돌아보라. 주민을 대표한다면 주민을 수단으로 삼지 말라. 공직을 맡았다면 사익보다 공익을 앞세워라. 그리고 정치가 끝나는 날, 자신의 양심 앞에서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

인제의 생활정치가 그 출발점에 서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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