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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오피니언

경쟁 사회의 필연적 그늘, ‘복지 사각지대’해소가 우선이다

인제신문 기자 입력 2026.09.08 07:53 수정 2026.09.08 07:53

<인제칼럼>

↑↑ 최용건 인제신문 주필
서울대학교 회화과 학사
동국대 교육대학원
(전)동아일보 칼럼니스트
장편 소설 ‘그녀가 자작나무숲으로부터 걸어
나왔다’ 책과나무 출판사외 수필집 다수 출간
ⓒ 인제신문

어느 체제를 막론하고 인간이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가는 이상 문자 그대로 완벽한 평등 사회를 만들기는 어렵다.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심지어 평등을 가장 강하게 내세운 체제라 하더라도 현실에서는 권한과 책임,재산과 능력,명예와 지위에 따라 일정한 서열이 생겨난다.서열을 만드는 동기는 서로 다를 수 있지만 사람들에게는 조금 더 나은 삶,조금 더 높은 자리,조금 더 많은 인정과 보상을 얻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이 욕구는 경쟁을 낳고,경쟁은 사회를 움직이는 힘이 된다.

문제는 경쟁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승자와 패자가 생긴다는 점이다.더구나 모든 사람이 같은 출발선에서 경쟁하는 것도 아니다.어떤 사람은 넉넉한 가정환경과 교육 기회를 안고 출발하지만,어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장애나 질병을 안고 살아간다.평생 성실하게 일하던 가장이 갑작스러운 사고나 실직으로 소득을 잃을 수도 있고,자녀와 떨어져 사는 독거노인이 병원비와 난방비를 걱정하며 하루하루를 버틸 수도 있다.이러한 삶의 위기를 모두 개인의 능력이나 노력 부족으로 돌릴 수는 없다.

예를 들어 한 가정의 가장이 갑자기 일자리를 잃었다고 하자.당장 월세와 공과금,자녀의 급식비가 부담이 된다.처음 한두 달은 모아 둔 돈으로 견딜 수 있지만 시간이 길어지면 생활 전체가 흔들린다.이런 가정에 필요한 것은‘왜 미리 대비하지 못했느냐’는 질책이 아니라 다시 일어설 때까지 버틸 수 있게 해 주는 긴급한 사회적 안전망이다.복지는 바로 이런 순간에 존재 이유를 갖는다.

독거노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행정상으로는 자녀가 있다는 이유로 지원 대상에서 빠졌지만 정작 자녀와 연락이 끊겼거나 실질적인 부양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장애인 가족 역시 서류상 소득 기준을 조금 넘는다는 이유로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더라도 실제로는 간병비와 치료비 때문에 생활이 극도로 어려울 수 있다.제도가 사람을 돕기 위해 만들어졌는데,오히려 제도의 기준선 때문에 가장 절박한 사람이 밖으로 밀려나는 일이 생긴다면 그것이 바로 복지 사각지대다.

우리 사회에서는 이러한 빈틈을 종교기관과 민간 자선단체가 상당 부분 메워 왔다.교회와 성당,사찰에서는 무료급식과 연탄 나눔,장학사업,독거노인 방문,긴급 생계비 지원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시민단체와 자원봉사자들도 행정기관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어려운 이웃을 찾아내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종교와 민간의 자발적인 나눔이 활발하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지닌 소중한 자산이다.

그러나 민간의 온정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자선은 도움을 주는 사람의 형편과 의지에 따라 규모와 지속성이 달라질 수 있지만 공공복지는 국민의 기본적인 삶을 지키기 위한 제도적 책임이기 때문이다.행정기관은 지원을 신청하러 찾아오는 사람만 기다릴 것이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먼저 찾아내는 적극적인 복지로 나아가야 한다.특히 농촌의 홀몸노인,장애인 가정,갑작스러운 실직이나 질병으로 생계가 막막해진 가정처럼 스스로 도움을 요청하기 어려운 계층을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복지 재정은 한정되어 있다.그렇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똑같이 나누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열 사람이 똑같이 만 원씩 받는 것보다 당장 한 끼 식사를 걱정하는 한 사람에게 필요한 지원을 집중하는 것이 더 절실한 복지일 수 있다.평등이 모든 사람에게 같은 양을 나누어 주는 것이라면,복지는 각자가 처한 어려움에 따라 필요한 만큼 도움을 주는 것이어야 한다.

경쟁 없는 사회를 만들 수 없다면 적어도 경쟁에서 뒤처진 사람이 인간다운 삶까지 잃는 사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성공한 사람에게 박수를 보내는 것만큼 실패하거나 쓰러진 사람에게 다시 일어설 기회를 주는 것도 공동체의 책임이다.사회의 품격은 피라미드의 정상이 얼마나 높은 가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가장 아래에 있는 사람이 얼마나 안전하게 보호받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한 척도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종교기관과 민간단체가 서로 역할을 나누되 공공복지는 그 가운데 가장 든든한 마지막 버팀목이 되어야 한다.복지의 손길은 넓게 펼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춥고 어두운 곳에 먼저 닿아야 한다.경쟁 사회의 그늘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을지라도 그 그늘 속에서 홀로 버려지는 사람만큼은 없게 만드는 것,그것이 오늘날 복지가 지향해야 할 가장 중요한 원칙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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